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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주‧부평‧동두천 4개 폐쇄 미군기지,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 본문

지역 소식/전국

원주‧부평‧동두천 4개 폐쇄 미군기지,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

Herb BOM 2019. 12. 12. 13:2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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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주‧부평‧동두천 4개 폐쇄 미군기지, 주민 품으로 돌아온다

 - 용산기지 반환도 본격 개시하기로... -

 

▸한‧미 SOFA 합동위, ①오염정화 책임, ②사용중인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방안,

  ③SOFA 관련 문서 개정에 대해 지속 협의하는 조건으로

  4개 폐쇄 미군기지 즉시 반환에 합의

▸용산공원의 차질 없는 조성을 위해 용산기지 반환절차 본격적으로 시작

▸한세기여만에 제 모습 찾아가는 용산, 반환절차의 첫발 내딛는다.

 

□ 정부는 12월 11일(수) 오후,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

  미국과 제200차 SOFA 합동위원회(이하 합동위)를 개최하고

  장기간 반환이 지연되어온 4개 폐쇄 미군기지*를 즉시 반환받는 한편,

  용산기지의 반환 협의 절차도 개시하기로 했습니다.

 

* 원주(캠프이글/'09.3월 폐쇄, 캠프 롱/'10.6월 폐쇄),

  부평(캠프마켓/'11.7월 폐쇄),

  동두천(캠프호비 쉐아사격장/'11.10월 폐쇄)

  

ㅇ 한‧미 양측은 ①「▵오염정화 책임, ▵주한미군이 현재 사용중인 기지의 환경관리 강화방안,

  ▵韓측이 제안하는 SOFA 관련 문서의 개정 가능성에 대해 한미간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하에 4개 기지 즉시 반환」에 합의하고, 아울러 ②「용산기지의 SOFA 규정에 따른 반환절차 개시」에도 합의했습니다.

 

 

 

□ 이번에 반환되는 4개 기지는 2010년(롱, 이글, 호비 쉐아 사격장)과 2011년(마켓)부터

  SOFA 규정에 따른 반환절차를 진행했으나, 오염정화 기준 및 정화 책임에 대한

  美측과의 이견으로 오랫동안 반환이 지연돼왔습니다.

 

ㅇ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한‧미 양측은 2019년 초부터 환경ㆍ법 분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

  합동실무단(JWG, Joint Working Group)을 운영했으나,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.

 

□ 이에 반환 지연에 따른 오염확산 가능성과 개발계획 차질로

  경제적·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지역에서 조기 반환 요청이 끊임없이

  제기돼 온 상황 등을 고려하여, 정부는 NSC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쳐

  지난 8월 30일 이들 4개 기지의 조기 반환 등을 추진하기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.

 

ㅇ 이를 위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부처(외교부, 국방부, 환경부)가 참여하는

  범정부TF를 구성하여 기지를 반환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와

  입장 조율을 거쳐 美측과 SOFA 채널을 중심으로 협의를 진행해 왔습니다.

 

ㅇ 다만, 美측과의 오염책임 문제 관련 협의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되어 온 반면,

  기지 반환 문제는 보다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여서, 우리측은 이번 SOFA 합동위에서

  앞으로 미측과 협의를 지속한다는 조건 하에 4개 기지의 즉시 반환에 합의했습니다.

 

□ 기존에는 한‧미간 정화책임 관련 협의가 장기간 공전하여 기지반환 자체가 지연됨에 따라,

  美측과 정화책임 관련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SOFA 관련 협의를 종결하였다면,

 

ㅇ 이번에는 美측의 정화책임과 환경문제 관련 제도개선 등에

  대한 협의의 문(門)을 계속 열어놓고 기지를 반환받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.

 

ㅇ 앞으로 정부는 美측과 협의를 계속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.

 

□ 한편, 이번 합동위에서 한‧미 양측은 ’용산기지의 SOFA 규정에 따른

  반환절차 개시‘에도 합의했습니다.

 

ㅇ 정부는 주한미군사령부의 인원 및 시설 대부분이 평택으로 이미 이전한 상황에서 

  2005년에 발표한 용산공원 조성계획이 과도하게 지연되지 않도록

  SOFA 반환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.

 

 ㅇ 앞으로 반환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철저하게

  환경조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.

 

□ 용산기지 반환절차의 첫발을 내딛는 이번 합의는 용산이 과거 외국군대 주둔지로서의

  시대를 마감하고, 우리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.

 

ㅇ 용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주요 전쟁기에는 외국군대가 주둔하였고,

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핵심거점으로 이용됐던 지역으로서,

  용산기지의 반환은 이 지역에서 한세기여만에 우리의 역사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.

 

ㅇ 아울러 광복 이후에는 용산에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이곳에서

  한미동맹의 역사가 시작됐는데, 이제 용산시대를 넘어 평택시대의 개막으로

  한미동맹이 새로운 시대로 발전해 나가는 상징성도 담고 있습니다.

 

□ 정부는 이번에 반환절차를 개시한 용산기지를 포함하여 미군의 이전으로 폐쇄됐거나

  폐쇄될 예정인 나머지 기지들도 미측과의 환경문제 관련 협의 진전 동향 등을

  종합 감안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반환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.

용산기지의 역사

▴(고려시대) 13세기 말, 몽골군(元) 침략 시 용산에 일본정벌을 위한 병참기지 설치 → 최초의 외국군 주둔

▴(1592년) 임진왜란 초기 왜군은 용산에 후방 병참기지 조성

▴(1882년) 임오군란 시 용산기지 북부(現캠프 코이너)에 청나라군 지휘소 설치 → 同 시기부터 외국군대가 용산에 상주

▴(1894년) 청일전쟁 발생 후 일본군 8천여명 용산 상륙, 조선 진출의 전초기지로 활용

▴(1899~1918년) 일본은 일본의 용산에 대륙진출의 발판 마련(철도 건설) 및 군사기지(사령부 건설) 구축을 통한 한반도 식민지화 본격 시행

▴(~1945년) 용산은 대륙침략을 위한 동원기지로 변화, 1938년부터 시작된 조선 청년 강제징용의 입영장소로도 사용

▴(1945~1949년) 미군정 시기 美7사단 주둔하여 3년여 사용

▴(1949년) 대한민국 정부 수립('48년) 후 국방부와 육군본부 용산으로 이전했으나, 6·25전쟁 발발로 용산에 한국군 단독으로 주둔·활동한 것은 1년 미만에 불과

▴(1950~1953년) 한국전쟁 기간 미군은 용산기지 재건 개시하자 '52년 정부가 미군에 공여, 정전협정 후 '53년 9월 美 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

▴(1957년) '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미군 주둔의 법적근거 마련, '57년 유엔군 사령부 이전(←도쿄) 및 주한미군사령부 창설('67년 SOFA 체결), '78년 연합사령부 창설

▴(1987년~) 전·평시 작전통제권 전환과 함께 용산기지 이전 논의 시작

   * '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‘작전통제권 환수 및 용산기지 이전’을 공약으로 제시

▴(2003년~) ▵'03년 한·미 정상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 ▵'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(YRP) 체결 ▵'05년 용산국가공원 조성 결정 ▵'07년 「용산공원조성 특별법」 제정

  ※ 출처 : ’군사적 관점에서 본 용산 기지의 역사‘(한미연합군사령부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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